<2026.08.18 새벽2부 예배 담임 목사님 '질그릇 속의 물' 말씀 요약, 이사야 55:1~3, 작성자: 이용석 안수집사>
   탈무드(Talmud)에 보면 물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물은 황금 그릇이나 은 그릇처럼 화려하고 귀한 그릇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초라한 그릇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인 '토라(Torah)'도 자신을 질그릇처럼 낮추는 사람에게 발견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물을 마실 때, 금이나 은 그릇에 마시지 않습니다. 물론, 그 안에 담겨 있는 물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을 가장 소박한 그릇에 마십니다. 중요한 것은 물이 우리를 살린다는 것입니다. 그릇이 우리를 살리는 것은 아닙니다.
   특별히, 우리가 더 소박한 그릇으로 주님 앞에 그런 자세로 나갈 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또한 그 그릇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질그릇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는 은혜를 부어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얼마나 무조건적인지 목마른 자들은 다 나오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말라서 주님께 나오면, 무조건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긍휼하심 앞에 나아가는 우리의 자세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우리에게 묻고 있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는 목마른 자를 부르십니다. 오늘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대상은 돈 있거나 능력 있거나 힘 있는 자들이 아니라, 바로 목마른 자입니다. 교회는 항상 목마른 자가 오는 곳이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기가 우물입니다. 우물을 만들면 양떼가 알아서 우물로 모입니다. 우리가 주님 안으로 들어오면, 더러운 것들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러나, 더욱더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우물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마른 사람들이 나올 수 있는 그 우물물을 지킨다면, 여전히 이 세상에는 목마른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다시 주님께로 나오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내 목마름을 깨닫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사회가 너무 풍요한 사회가 되었고, 조금만 노력하면 기쁨을 얻을 수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대한민국에서 목마른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목마른 자라는 것을 깨닫고 질그릇이 될 때, 하나님께서 거기에 채워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지금 얼마나 목마르냐를 재지 말고, 내가 목마른 자임을 고백하고 깨닫는 은혜가 있길 축복합니다.
   목마름은 정말로 사람을 어렵게 하는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물이 좋고 많은 나라입니다. 이 목마름의 문제는 우리 대한민국의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사막과 광야와 이런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물은 정말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목마름은 참을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사나흘 정도는 아무것도 안 먹어도 버틴다고 합니다.
   그러나, 목마름은 하루 이상 절대로 못 참는다고 합니다. 사람은 물 없이 살 수 없는 존재이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목마른 사람들은 정신없이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정신없이 물 앞으로 나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목마름을 지금도 찾으십니다. 그래서, 정직하게 내가 목마른 존재라고 인정하는 사람을 찾으시고, 그런 사람을 채워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러 우물가로 나옵니다. 이 여인은 이미 다섯 명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지금 사는 남편도 남편이 아닌 정말 기구(崎嶇)하고 목마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결혼'이라고 하는 어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이 여인을 바라봐서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다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가 목마른 사람이라는 것과 그 어떤 것으로도 자기를 채울 수 없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고, 이 여인의 삶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두레박으로는 도저히 내 인생을 채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갈증을 채워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긍휼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마르지 않은 척 살아갑니다. 우리가 다 양반(兩班) 문화입니다. 한국의 양반 문화가 굉장히 두텁기 때문에, 이것을 뚫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조금만 바쁘거나, 이 사람 저 사람이 나를 불러주면, 어느새 내가 다 채워진 줄 알고, 그렇게 우리를 속이며 살아갑니다. 오늘 이 시간 질그릇 되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질그릇됨을 깨닫고 우리의 목마름을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은혜로 우리를 채워주십니다. 우리가 내가 목마른 존재임을, 영원히 어떤 것으로도 나를 채울 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할 때, 내 두레박으로 채우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물줄기를 데워주시고, 날마다 나를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께서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시는 것에 우리가 주목해 봐야 합니다. 돈 없고 자격 없고 능력이 없거나 연약한 자들이 다 주님 앞으로 나오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세상에 값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값없이 와서 먹으라고 하는 장사꾼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잔치와 시장(市場)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시장은 우리가 응답하기만 하면, 가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시장입니다. 주님의 시장으로 가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시장은 그 연약한 자들이 가서 기쁨을 얻습니다. 우리가 돈이 없으면 시장에 가서 슬프지만, 하나님의 잔치는 돈 없는 자가 가서 기쁨을 얻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연약한 자가 나와서 기쁨을 얻는 곳입니다. 가진 자들이 내가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연약한 자들이 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그 상 앞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우리가 렘브란트(Rembrandt)의 '돌아온 탕자(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라는 그림을 보면, 탕자가 누구인지 안 보입니다. 아버지는 보이는데, 무릎을 꿇고 그의 앞에 안겨 있는 탕자를 감싸줍니다. 아버지는 얼굴도 있고 손도 있는데, 이 탕자는 머리는 다 벗겨져 있습니다. 탕자는 삭발을 했고, 발도 거의 맨발이다시피 합니다. 탕자에게 보이는 것은 머리 뒤통수와 등과 발밖에 안 보입니다.
   화가들 중에서 렘브란트는 어느 신학자보다 더 귀한 신학자입니다. 렘브란트의 그림이 그렇게 그려졌던 이유는 누구나 탕자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생긴 사람이 탕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탕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께서 우리를 품어주시고 안아주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때는 실패해도 망해도 자격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심지어는, 정말 이 세상에서 별의별 망가진 모습으로 돌아가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뻐 받아주시고 배부르게 하십니다. 우리의 그 목마름과 갈증을 해결해 주시는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사실, 우리끼리 자격을 따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격이 있는 사람은 원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느 누구도 자격이 없고 질그릇 됨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그 풍성한 생수의 은혜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듣는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들으면 영원히 산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조금 바꿔 생각해 보면, 듣는 것이 생수를 마시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똑같이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조건은 다른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듣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쓰러져서 죽기를 간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세밀한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천둥 소리나 지진이나 불 가운데 거대한 소리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조용한 음성으로 다가오셔서 그를 살려내십니다. 엘리야가 광야에서 브엘세바에서 하룻길을 들어가서, 여기 물 없는 곳에서 죽기를 간청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그 음성은 작은 목소리였습니다. 그 얼마 되지 않는 물이 엘리야를 살렸습니다. 오늘도 주님 앞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을 듣길 축복합니다.
   우리는 너무 들을 것이 많아서 오히려 듣기 힘든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치, 물이 많은데 정작 내가 마실 물은 없는 것이 홍수인 것처럼, 우리가 듣는 것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게 되면서, 정말로 무엇을 들어야 할지 모르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열고 말씀을 보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들을 것이 없는 이 시대에, 더욱더 우리는 단순하게 여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가운데 채워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많이 누리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별을 '지구(地球)'라고 부릅니다. '흙(Earth)'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보고 어떤 과학자가 우리 지구는 흙이 아니라, '바다(Ocean)'라고 불러야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땅보다 물이 많은 곳을 살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땅'이라고 부릅니다. 지구 표면의 70%가 바다입니다. 지구는 사실은 지구가 아니라 수구입니다. 
   이 세상은 땅이 아니라 물로 덮여져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늘 땅만 바라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보이는 것, 내 손에 잡히는 것, 이것이 우리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땅만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와 풍성하심을 물로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명절 끝날 날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물을 마시는 자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꾸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면서, 땅에 소산과 보이는 것만이 은혜인 줄 알고 살아가다 보면, 정작 우리를 덮고 있는 물의 은혜를 잊고 살아갈 때가 너무 많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은혜가 바다처럼 우리 가운데 임하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그 생수로 말미암아 살아나고, 질그릇같이 나를 낮추며, 나를 더 주님 앞에 정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때,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생수의 은혜를 우리 모두가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제목>
우리의 질그릇 안이 주님의 긍휼과 은혜로 채워지길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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